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기도하지 않고 성공했다면,
성공한 그것 때문에 망한다 라고 경고했다.
아무리 ‘바쁨’의 시대를 살아도
‘멈춤’의 순간을 가져야 한다.
이 땅에서 승리의 삶을 사신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고
마지막 호흡까지 기도에 사용하셨다.
기억하라. 승리의 길은 기도와 함께 간다.
좁은 길도 괜찮고 풍파의 길도 괜찮다.
그 여정에 기도가 있다면 승리의 여정이 된다.
승리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아도
기도가 없다면 그 길은
가장 위험한 길, 낭떠러지 길이다.
기도가 계속되고 있다면
그 삶은 멈춘 것이 아니다.
기도가 시작되었다면 그 삶은 전진한다.
하나님이 기도를 듣고 일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기에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다.
어떤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특별한 은사나 말주변이나 어떤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전의 한국 교회는 모든 것이 부족했으나
기도의 비밀을 알고 기도만큼은 붙잡았다.
교회마다 밤새워 기도했다.
산골짜기 기도원에도
수많은 사람이 기도하러 몰려들었고
밤마다 깊은 산속에는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위 위, 나무 옆, 강가에서
기도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그 기도가 한국 교회를 오늘까지 이끌었다.
그런데, 여전히 성도들의 기도 소리가 간절한가?
부흥의 연료인 기도 소리가 남아 있는가?
이 질문 조차도 사라진 것은 아닐까?
신앙생활이 밋밋한 이유는
기도가 밋밋해졌기 때문이다.
기도가 무르익어갈 때 믿음도 더욱 깊어진다.
믿음의 권태기가 찾아왔다면, 돌파구는 분명하다.
코로나와 같은 시대는
언제고 다시 다가올 것이다.
기도의 입을 막으려는 수많은 이유와 환경이
또 다시 몰려올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선택이 삶을 결정할 것이다.
그때마다 상황을 분석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문제를 풀어내려 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문제의 답이 되실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서서 기도의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기도하기를 멈추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을 멈춘 것이다.
성도에게도 우상 숭배가 있는데
가장 심각한 우상이 ‘자기 자신’이다.
내 스펙, 내 건강, 내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영혼의 중병에 걸린 것이다.
믿음의 중병에 걸린 것이다.
약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연약한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연약할수록 기도해야 한다.
더욱 하나님께 엎드려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약함은 강함으로 역전될 것이다.
연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기도의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이 될 것이다.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망의 파도가 휘몰아치는 위기에 기도의 사람
다윗이 택한 돌파구는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었다.
왕권이나 인맥,
자신의 능력과 방법이 돌파구가 아니었다.
고난이 찾아올 때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찾아갔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다윗은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라고 반복해 말한다.
“주님이 대안입니다.
주님만이 대안입니다!”라는 외침이다.
우리도 고난이 찾아오면 고난을 맞이해
넋 놓고 고난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시선을 돌려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찾아가
그분께 아뢰어야 한다. 그것이 기도이다.
이제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 기도를 멈추지 말고(이현우)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17)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주님 기도가 식었던 것을 회개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데,
기도한다고 뭐가 될까? 안되면 어쩌지? 했던
믿지 못함을 회개합니다.
결론은 주님께 맡기고
이 순간 최선을 다하며 기도하며
주님과 함께 걸어가게 하소서.
더욱 불타는 주님을 향한 사랑은
말씀과 기도의 불을 부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