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목사님이 기차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식사 시간이 되어 식사를 하려고 식당칸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거기에는 한 노인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식사 분위기는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향해서 끊임없이 불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그 여자분의 불평 소리를 귀기울여 들어 보았습니다.
“고기가 너무 질길 것 같아서 못 먹겠네요. 야채는 싱싱하지가 않아요. 과일은 너무 신맛이 나네요. 도데체 음식이 왜 이런지 모르겠네요.” 불평은 계속되었습니다.
“기차 안에 너무 더운 것 같아요. 정말 네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네요. 우리가 여행을 잘못 온 것 같아요.”
옆에 있는 목사님을 의식한 듯, 남편이 정중하게 목사님께 말을 걸었습니다.
선생님, 정말로 죄송합니다.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제 아내의 원래 직업이 그렇습니다.
목사님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도데체 저 여자분의 직업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부인의 직업이 무엇인가요?”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 아내는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그러자, 목사님은 더욱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도데체, 어떤 제조업에 종사하고 계신가요?”그러자, 남편이 조용히 이야기합니다.
“제 아내는 불행을 제조하는 사람입니다. 매일 불평과 원망을 하면서 스스로 불행하게 살고 있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불행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행복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신가요? 행복을 만들며 살고 계신가요? 아니면, 불행을 만들면서 살고 계신가요?
성프란치스코의 “평화를 위한 기도”라는 시를 잘 아실 것입니다.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그릇됨이 있는 곳에 참됨을 /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에 빛을 /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나를 잊음으로써 나를 찾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평화와 행복을 만드는 Peacemaker 가 될 수도 있고,
평화를 깨뜨리는 Trouble maker 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누군가에게 평화를 주는 Peacemaker 가 되시길 축복합니다.